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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양의막파종친] 연주현씨 제주도 친족회 양의막파 묘지 성역화 사업의 발자취 2023.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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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10-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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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현씨 제주도 친족회 양의막파

묘지 성역화 사업의 발자취

 

오랜 세월 속에 살아오면서 가난과 굶주림의 역경은 지난날 누구나 거쳐온 삶이라고나 할까.

1998년 11월 가을 추수가 막 끝날 무렵이었다. 연주현씨 양의막파 친족회 총회가 성산읍 신천리 수묘손인 진오친족님 집에서 개최되었다. 제주도의원 선거에서 양의막파 현성익 친족이 당선된 것을 축하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의원으로 당선되었으니, 쓰러져가는 양의막파 친족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하명도 있었다. 양의막파의 자손으로서 도리를 다하라는 친족님들의 한결같은 절체절명의 염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명무실한 친족회에 회장직을 맡아야만 했다.

연주현씨 양의막파 친족으로는 국회의원 6선을 역임한 현오봉의원님, 국선 심사위원으로 서예가 소암 현중화선생님, 삼성그룹에서 성장의 주역인 현명관회장님 등등…

이토록 자랑스럽고 훌륭한 인재들을 함께한 친족회였다. 한때는 선조님들이 남겨 놓은 유산이 있어서 어려움을 모르고, 친족회를 운영해 왔다. 유산인 묘 좌전을 관리해 오다가 불행한 경제 파탄으로 묘 좌전이 전부 타인에게 양도되고 말았다. 묘지가 있는 진입로마저 없어져 버린 현실 앞에 친족회는 앞길이 캄캄하였다. 하지만, 성익회장님은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었다. 승만 총무와 함께 고민하면서 앞으로 개발이 착수된 후에는 진입로 매입이 불가능할 것 같아, 묘지 진입로부터 우선 해결해야 했다.

1999년 선영의 묘지 진입로 토지 소유주를 수소문하여, 서울에 사는 토지주와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 토지교환 및 일부 매매형식으로 진입로를 개설하고, 분할 측량 이전 등기를 모두 마치게 되었다.

친족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친족님들이 자손의 도리를 한번 해보자는데, 힘을 모았다. 제대로 관리를 못 해 가시넝쿨이 우거진 양의막 할머님의 묘지를 정리하고, 사전이모루에 모셔진 할아버님을 양의막 할머님이 자리에 함께 모시자는 것이었다. 할아버님이 모셔진 ‘사전이모루’보다 할머님을 모신 ‘양의막’ 묘터가 더 명당이라고 해서, 친족회에서는 오래전부터 할머님의 모셔진 양의막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왔다. 그래서, 떳떳한 양의막의 자손임을 후세에 넘겨주고자 굳은 다짐을 하면서 묘지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업비는 전무한 상태였다. 고심 끝에 성금 모금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양의막파 친족 상황을 파악하고, 선조님 묘지 성역화 사업 방법에 대한 친족님들의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성익회장님은 혼자 상경하여 서울 신라호텔 사장으로 재직 중인 명관 친족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 사연을 말씀드리면서 친족회 명예회장직 자리를 수락받았다. 대종회 승종회장님과 진규수석부회장님, 기일부회장님께도 자문을 구했고, 현오봉의원의 차남인 왕수 제주장학회이사장 등 많은 관심 있는 양의막파 친족님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양의막묘지성역화사업의 취지를 알렸다.

성익회장님은 자비를 들여가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 거주하는 제주도 친족회장님을 만났다. 만나고 보니 친족회장은 법환동 출신으로 양의막파였다. 갖고 간 허벅술로 제주를 올리고 친족회 묘지를 참배하였다. 오사카에서도 친족회를 방문하며 4박5일 동안 묘지 성역화 사업에 대한 취지를 알리니, 친족님들도 동조의 뜻과 함께 많은 성원 주셔서 큰 힘을 얻게 되었다.

2003년 4월 입도조 목사공 후손 중 실묘 된 선조님 6위의 제단을 만들어 묘비를 건립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후손의 도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