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장군공파 집성촌 현촌 지명의 유래
대종회 이사 현근수(소위장군공파 27세)
❒현촌마을 행정구역의 변천은 다음과같다.
고려(태조23년)940년 양성현의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조선초기(태종13년)1413년에는 충청도에서 경기도 양성현으로 바뀌었으며, 중종19년(1525년)에 입향시조님(걸:13세)께서 양성현 현촌마을에 정착하셨다. 조선후기(고종32년)1885년 양성현을 양성군으로 1914년 양성군과 안성군을 병합개편하여,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용이리 현촌으로 되었다. 이후 1983년 2월 행정구역개편으로 평택군 평택읍에 편입, 1986년 1월 평택군에서 평택시로 승격되어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현촌으로 되었다. (자료) 주제로보는 평택시 사(史):향토지, 조선후기 안성지방지도 : 이현군 역사지리학자.
⃞ 소위장군공 양성파 정착지의 근거
갑자보(5수:1924년)에서보면 문하시랑공(담윤)의 직계종손 치룡(도첨의공 6세)의 장남 옥량(7세)의 묘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차남 윤녕(7세)과 희(8세:소위장군), 서침(9세)의 묘는 평안북도 영변군 연산면에 모셔져 있으나 우방(10세)의 묘는 불분명하다. 이후 응준(11세)은 안성고을에서 참봉으로 봉사하셨고 묘는 안성오촌에 귀윤(12세)는 양성현촌에 모셔져 있어 양성파로 등재 되어있으며 걸(13세)는 양성현촌에 모셔져 있다고 하나
현재 실존하지는 않는다(11세~13세
